충남 홍성에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봉산이 있다. 산 모양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과 상서로운 새 봉황의 머리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한국인이 첫손에 꼽는 금강산에 용과 봉황까지 닮았다니,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대된다. 2024년은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신(四神) 중 동쪽에 있는 청룡의 해다. 새해가 시작하는 1월, 전설에 등장하는 용의 기운을 가득 받을 명소로 용봉산만 한 곳이 없겠다.
용봉산 정상은 해발 381m다. 등산 초보도 오를 만한 높이지만, 겨울 산행은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다. 출발점은 두 곳으로 구룡대매표소와 용봉산자연휴양림이다. 용봉사와 악귀봉, 노적봉, 정상 등을 두루 감상하고 내려오기까지 2시간~2시간 30분이 걸린다. 이번 용봉산 등산은 구룡대매표소에서 시작했다. 용봉산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구룡대매표소까지 도보로 약 15분 거리다.
산길에 들어서기 전, 시선을 들어보니 용봉산이 한눈에 잡힌다. 과연 봉우리를 잇는 능선이 꿈틀하며 승천하기 직전의 용과 닮았다. 용의 등에 올라서 바라보는 용봉산 주변 경치가 어떨지 궁금해 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숲길에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 가운데 있는 문이 보인다. 용봉사 일주문이다. 문을 통과해 5분쯤 걸었을까. 용봉산 기슭에 자리한 용봉사가 나왔다. 용봉사는 수덕사의 말사로, 절 주변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으로 보아 백제 말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한다. 용봉사마애불(충남유형문화재)과 용봉사부도(충남문화재자료), 용봉사지석조(충남문화재자료) 등 경내에 문화재가 여럿이며, 용봉사 영산회괘불탱(보물)이 유명하다. 괘불은 절에서 큰 행사가 열릴 때 야외에 걸어놓는 대형 그림이다. 영산회괘불탱은 17~18세기 불교회화의 특징이 드러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대웅전 계단 아래에서 지붕 너머로 멀찍이 보이는 병풍바위가 용봉사에서 감상한 가장 멋진 장면이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에 올라선 사람들이 점을 찍은 듯 흐릿한데, 그 모습이 아찔하다. 용봉산 전체가 큼지막한 바위로 이뤄져 산행 내내 병풍바위같이 근사한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지장전을 지나 산으로 더 들어갔다. 길이 조금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널찍한 터가 나오고, 지면을 굽어보듯 선 불상 하나가 눈길을 끈다. 커다란 바위를 조각해 만든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보물)이다. 높이 약 4m 불상을 돋을새김한 정성이 놀라운데, 부처를 향한 신심이 단단한 바위를 이긴 증거로 보인다. 불상은 바위에 편안히 안긴 듯 기도하러 온 이들과 시선을 맞추려는지 적당한 각도로 숙인 모양이다. 처음 만들 때부터 기울기까지 정교하게 계산한 불상임이 틀림없다.
마애여래입상을 지나자 등산로 경사가 더 가팔라졌다. 위험한 구간에는 철제 계단을 설치했는데, 오를 때마다 길 양쪽으로 기묘하게 생긴 암석이 연이어 등장한다. 삽살개바위와 두꺼비바위, 물개바위 등 이름은 물론 생김새도 재미있는 바위를 보며 걸으니 어느새 악귀봉(368m)에 다다랐다. 저 멀리 충남도청 청사와 내포신도시 아파트 숲이 보이고, 예산군 쪽으로는 파도가 넘실대듯 덕숭산과 가야산 등성이가 펼쳐진다.
악귀봉에서 노적봉(351m)을 거쳐 정상까지 가는 길도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절벽을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길로 접어들다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집채만 한 바위에 올라서 있다. 산길 중간에 바위틈을 뚫고 가로 방향으로 누운 듯 자라는 작은 소나무를 보고, 행운바위와 솟대바위 등 절묘한 모양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은 바위와 마주쳤다.
정상에는 비석 모양 표석이 있다. 용봉산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느라 주변이 잠시 소란스럽다. 어디서 왔는지 가족처럼 보이는 길고양이들이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조금 전 지나온 악귀봉과 노적봉 쪽으로 용봉사와 마애여래입상이 작은 모형처럼 보인다. 병풍바위와 악귀봉, 노적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눈으로 되짚어보니 새삼 용의 형상이 떠오른다. 하산하기 전 바위에 앉아 잠시 여유를 즐긴다. 용봉산이 주는 푸른 용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용봉산자연휴양림 동절기(11~2월) 이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연중무휴),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군인 800원, 어린이 400원이다.
용봉산에서 내려와 홍주성역사공원으로 이동한다. 홍주읍성과 홍주아문, 안회당 등이 모여 있어 가볍게 걸으며 홍성군의 역사를 둘러보기에 좋다. 홍주읍성(사적)은 홍성군의 대표 유적지다. 원래 성벽은 길이 1722m로 이어져 있었는데, 현재 남쪽 800m만 남았다. 서문과 북문은 남아 있지 않고, 1975년과 2012년에 각각 복원한 조양문(동문)과 홍화문(남문)만 볼 수 있다. 늦은 오후 해가 질 때쯤 홍화문을 사이에 두고 보는 안팎 풍경이 근사하다.
홍화문에서 홍성군청 방향으로 직진하면 조선 시대에 관청 출입문으로 쓴 홍주아문이 나온다. 이 문은 현재 남은 아문 중 가장 크다. 1870년(고종 7) 홍주읍성을 수리할 때 함께 세웠다. 흥선대원군이 쓴 홍주아문의 현판 글씨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문은 지금도 홍성군청 입구로 사용한다.
홍성군청 뒤에 있는 한옥은 옛날 홍성 지역을 다스린 관료가 근무한 안회당이다. 이 건물과 마주한 자리에는 작은 연못에 정자가 있다. 홍주목사가 업무를 보다 잠시 쉬었다는 여하정이다. 아담한 안회당과 여하정 사이 빈터에서 홍성 겨울 여행을 마무리했다.
여행 정보
위 정보는 2023년 12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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